fbpx

‘르 캬바레 도산’ 총괄셰프, 이영라 님

“남에게 묻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

11월 3일 콘조이스 연사 – 이영라 님

이영라 님 

–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지만 요리가 너무 하고 싶어 뒤늦게 방향을 틀었습니다. 르 꼬르동 블루-숙명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제철 한국 식재료로 프랑스 요리를 만드는 셰프가 됐습니다.
– 파리 미슐랭 3스타 Ledoyen과 Pierre Sang에서 인턴으로 일했으며, 재밌고 창의적인 요리를 하기 위해 식재료 연구에 많은 시간을 씁니다. 요리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요리사로서 오래오래 일하는 것이 꿈인 욕망 가득한 여성입니다.
– 부암동 프렌치 레스토랑 ‘프렙'(Prep)의 오너 셰프로 일하다가 올 9월부터 주식회사 ‘어반 딜라이트’의 총괄 셰프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어반 딜라이트의 여러 매장 중 하나인 ‘르 캬바레 도산'(le Cabaret DOSAN)에서 재밌는 요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 tvN ‘수요미식회’의 자문 위원도 맡고 있습니다.

 


 

[그도 몰랐던,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은 많았어요. 초등학생 때 이미 가족 식사 메인 요리를 만들기도 했고요.

부모님께서 미식가였어요. 아버지는 집에서 가까운 도매시장에 나가서 좋은 제철 재료를 사 오시고, 어머니는 저를 포함한 세 딸과 요리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리고 매일 저녁 다섯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걸 매우 좋아하셨죠. 특히 아버지는 새벽에 장 보러 가는 걸 즐기셨는데, 그때마다 저도 많이 따라다녔어요.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BBC 요리 프로그램을 봤어요. 영어를 다 알아듣진 못해도 화면을 보고 있으면 창의적인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부모님의 행복이 아닌 ‘나의 행복’에 집중하다]

사실 아버지께서 법 전공을 권유하셔서 법대에 진학했어요. 저는 서른 살 때까지 부모님의 행복을 위해 살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저에게 강요하신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제가 뭔가를 잘하면 좋아하시니까 그걸 보는 게 좋았어요. 그게 행복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 법 공부가 아닌 다른 걸 시켰어도 열심히 했을 거예요.(웃음)

석사까지 마치고 한국에서 있는 미국계 회사 법무팀에서 2년간 일했어요. 그때 미국 변호사들과 일하면서 그들의 법 교육 제도가 되게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저런 교육 한 번 받아보고 싶다’는 동경도 생겼고요. 그래서 돈을 열심히 모아 미국 로스쿨에 들어갔죠.

LA에 있는 로스쿨을 다녔는데 워낙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다 보니 좋은 식재료가 아주 풍부했어요.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받으면 종종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 인근 지역 농부들이 제철 농산물 등을 가지고 나와 직거래 하는 곳.) 같은 데 갔죠. 캘리포니아의 싱싱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스르륵 풀리더라고요. 그때 내재되어 있던 ‘요리 욕구’가 폭발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한 거예요. 우연히 신문에서 ‘르 꼬르동 블루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입학 설명회에 갔는데 꼭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진짜 했죠.(웃음)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게 된다면 진짜 좋을까?]

르 꼬르동 블루에서 첫 수업을 받을 때, 진짜 너무 좋았어요. 그동안 제가 학문적인 공부만 했지 직업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르 꼬르동 블루는 요리사가 되기 위한 직업 학교잖아요. 첫 수업 때 안전과 위생 등 요리사로서의 자세를 가르쳐주는데 그게 그렇게 설레었어요. 제일 설렜던 건 조리복 입고 모자 쓰고 앞치마 매고 했던 것!

프랑스인 선생님이 불어로 수업을 하고, 통역사가 그 내용을 옆에서 통역해줘요. 저는 선생님 말을 바로 이해하고 싶었고 불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누군가 언어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이제 이렇게 말해요. “언어는 네가 진짜 필요로 할 때 3개월만 미친 듯이 하면 된다.”, “시험을 위한 언어 공부는 돈과 시간만 쓰고 남는 거 하나도 없다.” 그때 선생님의 말을 통역 없이 알아듣고 싶은 마음, 질문이 생기면 바로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불어 공부를 했어요. 나중에 말은 못 해도 다 알아들을 순 있게 됐죠. 설명하면 제 몸이 먼저 움직이니까 선생님도 제가 알아듣는 걸 알아채더라고요.

 

[매일 기본을 연마하라]

그렇게 딱 1년 동안 요리 교육을 받았는데 두 선생님이 훌륭한 분들이셔서 배운 게 정말 많았어요. 가끔 요리 쪽에서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선생님의 말을 떠올려요. “한우, 랍스터, 캐비어와 같은 고가의 재료로 음식을 맛없게 하면 그건 요리사도 아니다. 진짜 요리사는 가정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식재료들로 아주 높은 퀄리티의 음식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요.

서양에서는 가장 흔한 식재료가 감자와 닭고기예요. 그 말을 잊지 않고 전 지금도 감자와 닭고기 요리를 늘 연습하고 개발해요. 그렇게 해서 손님들이 ‘흔하고 쉽게 생각했던 감자가 이렇게 맛있었어?’, ‘닭고기가 이렇게 육즙이 풍부할 수 있나?’하며 감동하게 만드는 거죠.

 

논현동에 위치한 ‘르 캬바레 도산'(le Cabaret DOSAN)

 

[오십에 발레리나가 될 수도 있는, 나는 그런 사람]

재미요. ‘이 일을 해야겠다’라고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재미예요. 저는 이 일을 재밌어서 하는 거지, 큰돈을 벌거나 사회적 인식에 맞추기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만약 이 일보다 더 재밌는 일이 나타난다면 바꿀 거예요. 우리 삶이 굉장히 긴데 굳이 어떤 자리나 회사에 얽매여야 하나 싶거든요. 얼마 전 어머니에게 그랬어요. “내가 50세가 돼서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할 수도 있는 거다.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마라.”

지금은 요리가 제일 재밌어요. 아직까지는 저에게 요리보다 더 재밌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 재밌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다만 저는 상업적인 필드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일을 오래 하려면 사람들이 제 요리를 많이 찾게 만들어야 해요. 재미를 느끼는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요리’와 ‘손님들이 찾는 요리’의 중간을 맞춰가는 게 중요하죠.

 

[내가 결정하면 누군가를 원망할 일이 없다]

전 남의 말을 정말 안 들어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오로지 제 안의 이야기만 듣고 그대로 따르면 누구 원망할 일 없어서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진짜 하고 싶으면 그냥 해요.

얼마 전 신문에 느지막이 요리사가 된 저의 이야기가 나갔어요. 그 후로 서른 중반쯤 되는 분들이 저를 찾아와 “요리를 하고 싶은데 제가 해도 될까요?”라는 류의 상담을 청하더라고요. 처음엔 정말 열심히 조언해드렸어요. 그런데 만나다 보니 다들 마음속에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자기 답이 맞는지 남의 입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 분들께는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남에게 묻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즐기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온다]

7년 동안 요리사로서 찾아주시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제가 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군가 요리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제가 나가서 설명을 하잖아요. “이렇게 해서 같이 드시면 정말 맛있으니까 같이 드셔보세요.”라고 말할 때 ‘아 저 사람은 진짜 이 일이 재밌어서 하는구나’하고 느껴진대요.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힘든데,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로 함께하게 된 것도 그래요. 부암동 레스토랑에 손님으로 오셨던 문효은 대표님께서 이나리 대표님께 저를 추천해주셨어요. 문효은 대표님께서 오셨던 날이 제가 파리 미슐랭 3스타에서 주방 막내로 일하다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였어요. 파리에서 인상 깊게 봤던 식재료로 만든 요리에 대해 설명해드렸는데 그 모습이 인상 깊으셨나 봐요. ‘파리 가서 고생 많이 하고 온 것 같은데, 이 친구는 정말 좋아서 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으셨겠죠?(웃음)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인스파이러가 필요하다면 요리 쪽은 이 친구를 한 번 만나봐라”하고 저를 추천하셨대요.

 

[같은 유니폼을 입고 주방에 들어가면 여자고 남자고 없다]

주방에는 ‘여자로서’, ‘여성 셰프로서’ 이런 거 없어요. 똑같은 유니폼 입고 들어가면 여자고 남자고 없죠. 예전에는 이 업계가 남초였지만 더 이상 여성이 진입하기 어려운 곳은 아니에요. 그런 개념은 오래전에 깨졌어요. 요즘은 2스타, 3스타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셰프들도 많아요. 현재 권숙수 키친의 여성 요리사 비율이 60%가 넘고, 파리의 3스타 레스토랑에도 여성 요리사의 비중(파티쉐 포함)이 이제 절반 가까이 돼요.

다만 여전히 총괄셰프나 오너셰프의 비중은 낮아요. 우리나라에 여성 오너셰프는 10% 정도 된다고 해요. 왜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하는지 생각을 해봤는데 주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첫 번째가 야간근무, 주말 근무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 부족. 두 번째가 출산과 육아로 인한 체력적인 한계.

그래도 저는 진입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마음의 장벽부터 없애려고 해요. ‘이 분야가 남초니까 들어가면 불이익을 얻겠구나,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하죠.

 

[미디어에 ‘남성’ 셰프가 더 많이 나오는 이유]

예능에는 남성 셰프가 압도적으로 많이 출연해요. 그런데 교양 프로그램에는 여성 요리사나 요리연구가가 더 많아요. 제가 보기에 2~30대가 주요 타겟인 예능에서는 마치 게임처럼 출연자들끼리 경쟁하며 서로 공격하고 농담하고 치고받는 케미스트리가 중요한 요소인데요. 여성들은 대부분 겸손하거나 조신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망가지거나 상대방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꺼려 해요. 그래서 제작진이 자극적이고 예능적인 재미를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같은 이유에서 <무한도전>, <런닝맨>, <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 등 대세 예능이 주로 90%의 남성 출연자와 망가지는 것을 꺼리지 않는 10%의 여성 출연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고요.

 

[주방을 장악하는 나만의 노하우]

셰프가 자신감을 보여줘야 해요. 누군가에게 뭘 팔 때 내가 파는 제품에 영혼을 싣지 못하면 입이 안 떨어지잖아요. 영혼을 싣기 위해서는 자기가 서비스하는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해요. 그냥 직업인, 노동자라는 마음 그 이상이어야 하죠.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는 데 리더의 자신감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이 식당을 오픈할 때 직원들에게 “맛은 너무나 당연하고, 어떻게든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프렌치 요리를 손님들에게 낼 거다. 나를 믿고 자신 있게 손님들에게 음식을 권해라. 영혼을 실어라.”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셰프(Chef)의 어원이 추장(Chief)이래요. 강한 리더십과 권위가 있어야 셰프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아랫사람들이 셰프를 믿고 신나서 도와요.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셰프로서 조직을 끌어나갈 수 없어요. 이탈이 너무 많이 생기죠. 왜냐면 직원들이 평소 손님들로부터 감정적인 상처를 너무 많이 받고, 감정노동을 끊임없이 하거든요. 적어도 자기가 서비스하는 물건에 대한 자신감이라도 있어야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어요.

 

[나는 겸손하지 않기로 했다]

헤이조이스에서 거침없는 여성들, 본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여성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주변 친구들에게 “나는 2029년까지 겸손하지 않기로 했어”라고 했어요. 2029년이 제가 지천명이 되는 해거든요. 그때까지는 거침없이 살려고요.(웃음)

헤이조이스의 비전도 그런 이유로 마음에 들었어요. ‘영원히, 나답게.’ 뭘 하든 자신감이 중요하거든요.

 


 

<헤이조이스 프리미엄 컨퍼런스, Con.Joyce>

11월 3일 토요일,
이영라 님과 함께 ‘경력 전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Con.Joyce] 일을 바꾸다, 삶을 바꾸다.

댓글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