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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발전소’ 대표, 김소영 님

“잘 하는 일 대신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다”

11월 3일 콘조이스 연사 – 김소영 님

김소영 님

– ‘책발전소’ 대표, 북 큐레이터, 방송 진행자
– 십 대 시절부터 책을 좋아해 그 흔한 일탈의 추억 하나 없다. 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기에 후회는 없다.
– 2012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 그와 동시에 [MBC 뉴스데스크] [MBC 뉴스 24] [MBC 뉴스투데이] 및 라디오 [굿모닝 FM-세계문학 전집] [잠 못 드는 이유, 김소영입니다] 등을 진행했다. 우연히 맡게 된 라디오 프로그램의 책 읽어주는 코너를 맡아,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일의 재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 2017년 방송국을 나와 서울 합정동에 동네 책방 ‘당인리 책발전소’를 열었다. 책을 좋아하는 일과 책을 파는 일은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 저서: 『진작 할 걸 그랬어』(2018)

 


 

[“아나운서 같다”는 말을 듣던 아이, 진짜 아나운서가 되다]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건 아니었고요. 원래는 법조인이 되려고 했는데,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좀 더 자유롭고 역동적인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에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다 아나운서를 지망하게 됐어요. 그때 제가 시사,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그것들의 핵심을 파악하고, 타인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직업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 친구들로부터 “넌 말할 때 멋있다”, “목소리가 아나운서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요.(웃음)

특히 대학 때 토론 학회에서 활동하면서 대회 준비도 열심히 하고, <100분 토론> TV 프로그램을 많이 봤거든요. 아나운서가 되면 사회 이슈의 중심을 잡고,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전문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여자’ 아나운서라 주어진 기회와 한계들]

방송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방송은 참 가슴 뛰는 일이에요. On-Air 불이 들어왔을 때의 기분은 방송만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방송할 때 굉장히 즐거워요. 방송 자체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밌었어요. 그런데 여자 아나운서, 여자 방송인으로서의 삶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면이 있었어요.

원래 저는 성별에 관계없이, 예를 들어 뉴스를 진행하면 시사 이슈를 앵커의 관점으로 소화해 시청자들에게 들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그럴 순 없겠지만, 실력과 경험이 쌓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흔히 여자 아나운서를 ‘1등 신붓감’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지성과 미모를 갖춘(웃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선망하고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좋은 직업이죠. 처음에는 그것이 이 직업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그 이미지가 오히려 나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느꼈어요. 이를테면 어린 여자 아나운서는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것 같아요. 데뷔하자마자 동기 남자 아나운서보다 더 큰 관심을 끌고, 주요 프로그램에 투입되고,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일찍 소진되기도 해요. 한국 사회에서 여자 아나운서나 여자 앵커는 이미지적 측면의 요구를 더 크게 받거든요. 예를 들어 앵커로서 뉴스 한 줄이라도 더 읽고, 1분이라도 더 멘트를 다듬고 싶은데, 카리스마 있고 똑똑한 ‘외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때가 있었어요. 제가 꾸미는 데 재능도 없고 취미도 없어서 더 불편하게 느꼈을 수도 있어요. (웃음)

 

[원하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어서야 찾게 된 ‘진정한 나’]

입사하자마자 <MBC 뉴스데스크> 등 뉴스, 시사 프로그램을 주로 진행했는데, 당시 회사의 뉴스 방향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어요. 우리 보도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그 괴로움이 저의 개인 SNS에서 느껴진다는(?) 이유로, 10개월 정도 방송을 쉬게 되었어요. 윗선에서 방송 출연 금지를 시킨 거죠. 매일같이 사무실에 출근은 하되, 방송은 주지 않고 파티션 벽을 보고 앉아있으라는 건데, 처음에는 고문 같았지만 그 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당시에는 내 커리어와 인생이 반쯤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적절한 시점에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서요.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방송계에 뛰어들면서, 출연 금지 전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며칠 동안 집에 못 간 적도 있었고요. 또 입사 1년 차에 바로 프라임타임 뉴스 프로그램을 맡았기 때문에, 우선은 매일 방송이 사고 없이 진행되어야 했고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나’, ‘내 목소리를 내고 있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리 뉴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마자 ‘그럼 저리 꺼져’ 하는 일을 겪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매일 이렇게 뉴스를 진행하는 게 전부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퇴사 전 자기 자신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

처음에는 ‘이 일이 왜 생겼을까’ 문제 진단을 했어요. 다음에는 ‘나는 왜 방송을 하고 싶었나’, ‘앞으로는 무얼 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했죠. 긴 고민 끝에 ‘장기적으로 조직 안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원하는 삶의 모습과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고, 퇴사를 결정했어요.

대학 때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졸업하고는 5년 정도 뉴스 진행을 하면서, 항상 제 자신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평생 공부하며 살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이대로 가면 큰 발전이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멈추는 것 같아 괴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렇게 ‘10개월 명상’을 하다 보니 ‘더 이상 출근하고 싶지 않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때 퇴사를 결심하게 됐어요. 하지만 퇴사를 할 때까지도 다음 행보에 대해 정해놓지는 못했어요.

 

 

[‘책이 있는 공간의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퇴사하고 바로 창업을 하겠다고 계획한 것도 물론 아니었고요.

제가 올해 초 <진작 할 걸 그랬어>라는 책을 냈는데, 일본 책방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한데 그 여행만 해도 처음에는 무슨 사전 조사를 하러 간 것이 아니었어요. 당시 퇴사와 관련해 추측 기사도 많이 나고, 마음이 복잡해서 쉬러 간 거였죠. 한데 가서 할 일이 없다 보니 무작정 서점에 들어가 평소 좋아하는 책을 읽게 됐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며 어느새 혼란과 괴로움이 사라지고, 치유되는 것을 느꼈어요. ‘책이 있는 공간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때 처음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일본 여행을 갔던 게 2017년 8월이고, 그 한두 달 뒤 첫 번째 책방 ‘당인리책발전소’를 열었지요. 우리 부부가 산책을 하던 조용한 거리에요. 지나가다 ‘임대 문의’ 쪽지가 붙어있는 걸 보고 바로 계약했어요. 별 준비도 없이,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싶어서요.

 

[‘동네 책방’이 편의점, 약국처럼 당연히 여겨졌으면]

그렇게 낸 1호점이 운이 좋게도 내자마자 많은 관심과 반응을 얻었어요. 이런저런 제안들도 많이 들어왔고요.

한데 사실 저는 제 집 근처에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지 상업적으로 큰 목표를 갖고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러면서 ‘강남 혹은 홍대 한복판에 가야만 이런 서점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집 앞에 내가 기꺼이 머물고 싶을 만큼 세련되고 좋은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2호점은 기존 독립 서점이나 동네 서점이 진출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화적인 공간에 목말라 있는 곳을 중심으로 고민하게 됐죠. 그러다 우연히 위례 신도시를 떠올리게 됐어요.

저는 동네에 카페, 약국, 편의점이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앞으로 사람들이 동네에 책방이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릴 적에는 그랬잖아요. 그래서 책발전소는 책을 좋아하는 마니아를 위해 만든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동네에서 당연하게 책을 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으로 기억됐으면 해요.

 

[힘들 때 위로해주는 책보다 왜 힘든지 반문해주는 책이 좋다]

두 곳의 책방을 운영하며 제가 많이 읽는 책에도 변화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책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생각, 직업, 나이대 등을 고려하며 서가를 꾸며야 하니까요. 요즘은 각 세대, 성별, 직종, 계층의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며 궁금한 게 뭔지, 책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예전에는 제 전공이 사회학이어서 사회학, 인문학, 고전 문학 등을 좋아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책은 <안나 카레니나>였고요. 그렇게 인간의 희로애락과 사회 구조를 다루고 그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들을 좋아했어요. 자기 계발서나 소위 ‘힐링’ 에세이는 거의 읽지 않았죠.

근데 이제는 ‘사람들이 왜 힐링 에세이를 찾는지’ 알아야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많이 읽어보죠. 이를테면 요즘은 퇴사와 이직에 대한 책, 인생의 행복을 찾는 것에 대한 책이 굉장히 많은데 이런 책들이 팔리는 이유를 항상 염두에 두며 읽어요.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힘내세요”, “잘 하고 있어요”라는 힐링 메시지는 쉽게 휘발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바로 즉각적인 답을 주려고 하거나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보다는 ‘내 안으로 더 파고들게 하는 책’이 오래가지요. 힘들 때 들어보지도 않고 일단 토닥토닥해주는 책보다, 당신이 왜 힘든지 반문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저는 좋아요. 그런 책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잘하는 일 VS 좋아하는 일]

잘 될 때는 어떤 일을 하든 다 좋아요. 하지만 잘 안됐을 때는 다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경우엔 자기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좀 후회가 덜해요. 남들이 해보라고 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결과가 안 좋거나 타의에 의해 그만둬야 할 때는 절망감이 더 크죠. 지금은 좋아서 한 나의 선택인 만큼, 잘 풀리든 안 풀리든 온전히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남 탓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어 좋아요.

다만, 좋아하는 일로 시작했어도 그 일을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잘하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일이 커지니까 스트레스 자체는 잘하는 일을 할 때와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웃음) 물론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즐기는 수준에 머문다면 상대적으로 덜 힘들어요. 결국 자기 선택의 문제죠.

 

[경력 전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한 권]

<퇴사준비생의 런던>

런던에 있는 여러 공간이나 비즈니스들을 소개한 책이에요. 그냥 훑어보면 여행 책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이 책의 방점은 ‘런던’이 아닌 ‘퇴사준비생’에 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어떤 공간에 갔을 때 스스로를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좋다고 느끼지만, 퇴사 준비생이 되고 나면 ‘여기는 임대료가 얼마일까? 몇 사람이 들어갈까? 직원이 몇 명일까? 가능한 사업인가?’라는 것들을 계속 생각하게 돼요. 경력 전환이나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세상이 새로워 보이는 것 같아요.

 

[커리어에 방해가 될 것 같았던 결혼, 가장 큰 힘이 되다]

경력 전환에 결혼이 아주 많이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혼이 행복에는 도움을 주지만 경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확신했죠. 특히 여자 아나운서에게 ‘결혼’이 차지하는 상징이 크거든요. 결혼을 하는 순간 여자 아나운서라서 환영받았던 상당 부분이 사라지죠.

퇴사를 앞두고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결혼부터 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고 섣부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었기 때문에, 방해가 될 거라고 확신을 하면서 결혼을 했어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하면서 결혼한 거죠.

막상 결혼을 해보니 남편이 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굉장히 존중해주고 제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 도움이 많이 돼요. 저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많은 것을 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또 뭘 하려고 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도전 자체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죠.

 

[적어도 내가 내 한계를 규정하지 않기로]

창업을 하면서 바뀐 생각이 하나 있어요. 원래 ‘결혼은 당연히 방해가 될 거야. 이건 피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제는 ‘남편이 있고 가정이 있는 여성이라는 게 나의 미래를 막지 못하게 만들 거야.’라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셰릴 샌드버그의 <린인>이라는 책에도 관련된 내용이 나와요.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고 유리천장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여성들도 ‘내가 이 나이쯤엔 결혼을 할 거니까 편한 직장에 가자’라든지, 직장에 가서도 ‘내년쯤엔 아이를 가질 수 있으니 이 프로젝트는 하지 말자’라든지 하는 생각들을 자기도 모르게 한다.” 이 부분이 굉장히 와닿았어요. 저 역시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p.s 헤이조이스에서 어떤 여성을 만나보고 싶나요?

많은 여성분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처음에 창업할 때 너무 모르는 게 많았어요. 예를 들어 “부동산 계약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직원은 몇 명 뽑아야 되죠? 장부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요?” 그런 세부적인 문제들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죠.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현실적인 질문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네트워킹이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멘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궁금한 것들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고요.

 


 

<헤이조이스 프리미엄 컨퍼런스, Con.Joyce>

11월 3일 토요일,
김소영 님과 함께 ‘경력 전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Con.Joyce] 일을 바꾸다, 삶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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