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코리아 전무, 정김경숙 님

“우연과 행운을 믿지 않는다”

1월 12일 콘조이스 연사 – 정김경숙 님

정김경숙 님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이자 구글코리아 홍보 총괄 디렉터. 구글 청소년 멘토링, 게이글러(성소수자) 지지모임, 구글 사물놀이, 여행수다, Google for Everyone 접근성 모임 등을 리드하거나 핵심 멤버로 함께하고 있다.

회사 일을 통해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쁘고 감사하다. ‘뜨거운 가슴만큼이나 뜨거운 발바닥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운동과 각종 소모임 활동에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다섯 번째 대학원을 다니는 이유]

2018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원에서 디지털 문화정책을 공부하고 있어요. 미국 네브래스카대 MBA 마케팅 전공,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PR 전공, 경희대 경영대학원 e비즈니스 전공,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전공에 이어 다섯 번째 대학원이죠.

제게 중요한 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잘 알아야 하잖아요. 일례로 제가 미국에서 MBA를 할 때에는 인터넷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 그에 대해 배우지 못했어요. 한데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모든 회사에 홈페이지가 있고 e-커머스를 할 정도로 인터넷이 중요해진 거예요. 그래서 e비즈니스 공부를 했지요.

구글코리아 전에는 글로벌 제약회사에 다녔는데, 그곳과 구글 모두 비즈니스에 정부 정책이 매우 중요하더군요. 그 공부를 할 필요가 있에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갔고요.

이런 활동들이 제 에너지 레벨을 높여주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제 남편은 쉬어야 에너지가 생긴다는데, 저는 자꾸 움직여야 더 생기가 도는 타입이거든요.

[에너지가 있을 때, 시간이 있을 때]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25년 넘게 일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어떻게 힘든 시기를 극복했나요?”라는 질문이에요. 사실 일을 한다는 것이 자기 에너지, 지식, 경험을 쓰는 행위잖아요.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인풋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인풋을 채우는 방법으로 공부를 택한 거고요. 늘 ‘에너지가 있을 때, 시간이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공부하자’는 생각을 해요.

물론 공부를 하기 위해 꼭 학교에 다닐 필요는 없지요.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캠퍼스에서 느껴지는 젊은 에너지가 참 좋아요. 가족들은 “석사 학위 하나 더 추가한다고 표시도 안 난다, 그 시간에 쉬거나 아이랑 있거나 놀자”고도 하는데요. 저는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제 경력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체력도 실력… 검도 4단을 따다]

체력도 굉장히 중요한 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마라톤, 등산 등 여러 운동을 했었는데 유독 검도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사람들과 매일 아침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됐어요. 올해 드디어 사범이 될 수 있는 4단을 땄지요.

저도 20대 시절에는 그저 깡으로 버텼어요. 한데 서른이 넘어가니 그러기 힘들더라고요. 저는 유학 가서 삶이 공부-집-공부-집으로 되게 단조로워지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때 운동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쭉 운동을 해왔지요.

저는 늘 기분 좋고 활기차고 싶고, 다른 이들에게도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우선 체력이 돼야 그럴 수 있잖아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쉰다]

그래도 쉴 때는 완전히 확 쉬어요. 올여름에도 꽤 길게 휴가를 다녀왔어요. 일할 땐 몰입해서 일하고 쉴 때는 완전히 빠져나와서 쉬어야 해요. 정말 쉼을 위한 쉼을 가져야 그 후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쉬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가 또 일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니까요.

휴가를 길게 가는 또 다른 이유는 제가 길게 가야 다른 팀원들도 길게 갈 수 있어서예요. 윗사람이 아무리 휴가 가라고 말을 해도 보여주지 않으면 ‘내가 가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내 전문 분야를 언제 정해야 될까]

첫 직장인 모토로라에서 4년 정도 홍보 일을 했는데, MBA에서 전공했던 마케팅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부서 이동을 해서 마케터로 4년 정도 일했어요. 다음 직장인 한국릴리에서도 2년 반은 홍보, 2년 반은 마케팅을 했고 구글에 오면서 다시 홍보 일을 하게 됐죠.

저는 그 모든 과정이 좋았던 게, 홍보는 회사 전체, 즉 숲을 보는 거예요. 반면 마케팅은 제품 하나를 깊게 보는 거지요. 그래서 홍보를 할 때 마케팅을 모르면 그냥 브랜드 이미지만 생각하게 돼요. 또 마케터 입장에만 설 경우 “브랜드 이미지든 뭐든 좋은데, 일단 제품을 많이 팔아야지!”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거든요. 전 양쪽을 모두 경험한 덕분에 두 분야의 커뮤니케이션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저 역시 ‘언제까지 이렇게 왔다 갔다 할 거냐’라는 숙제는 있었어요. 구글에 와서야 ‘하나에 집중하는 것보다 크게 보는 것이 더 잘 맞는다’는 판단에 따라 홍보에 정착하게 됐지요.

그래서 전 기회만 된다면 10년 차 미만인 후배들이 다양한 부서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편이에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뭘 좋아하는지 알기 힘드니까요. 비슷한 분야에서 조금씩 경계를 넓혀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고요.

[‘준비’만 되면 얼마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수 있다?]

지금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면 계속 관심을 두고 시야를 넓혀야 해요.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주변에 자꾸 말해야 하고요.

물론 역량도 필요하지요. 그 일을 잘할 것 같이 보여야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대학원에 갈 수도 있어요. 그렇게 마음의 준비와 적절한 노출,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이 더해지면 얼마든지 새 영역에 도전할 수 있지요.

[내 시간의 20% 정도는 다른 일에 쓴다]

구글에는 ‘20%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어요. 내 시간의 20%를 맡은 일 외에 다른 일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마케팅 일을 하고 싶다면 마케팅팀에 가서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는 거지요. 도와준다는 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외연을 넓히는 거예요.

저는 일반적인 홍보 담당자가 잘 안 하는 일도 종종 해요. 예를 들어 6, 7 년전쯤 일부 뉴스 방식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낚시성 제목인 ‘허걱’, ‘알고 보니’, ‘충격’ 등의 제목이 붙은 기사들이 정말 많았고 같은 기사가 제목만 바뀌어 계속 올라오는 ‘어뷰징(abusing)’ 기사도 많았죠. 한 명의 독자이자 업무에서 언론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이 싫었어요. 물론 일부였겠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언론계 상황에 대해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6년 전쯤 ‘내가 미디어를 좀 바꿔보자’, ‘퀄리티 저널리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하는 고민 끝에 젊은 디지털 저널리스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금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언론 상생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해오고 있어요.

[더 많은 걸 하고 싶다면 무조건 잘해야 하는 것, 영어.]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영어를 알면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지니까요. 기회와 파급효과 모두 커지죠. 예를 들어 세월호 문제를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면, 우리나라에서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뉴욕타임스에 한 번 실리는 편이 낫지요. 그러려면 피켓이라도 영어로 적어야 해요. 하지만 아직 우리 마인드는 로컬 중심인 것 같아 안타까워요.

어떤 일을 영어 공부는 꼭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저는 아직도 1:1로 튜터링을 받아요. 영어는 빨리 안 늘어서 정말 꾸준히 해야 해요.

[구글의 매니저는 어떻게 사람을 이끄는가]

구글 매니저의 덕목 중 하나는 핸즈 온(hands-on)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디테일하게 지시하면 안 되고, 상대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권한을 줘야 해요. 그러나 동시에 매니저는 팀원들이 뭐 하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 매니저가 제 팀원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다 알고 답을 해줘야 하거든요. 이게 되게 어려운 일이에요. 다 알면 참견하고 싶어지거든요. 그래도 이 2개의 덕목을 같이 가져가야 한다는 게 좋은 철학 같아요.

참견하지 않는 방법은 아이 키우는 거랑 비슷한데요. 실수해도 세상 안 무너지고 회사 안 망해요. 아무리 큰 실수를 해도 회사는 안 망해요. 실수해서 배우면 다음엔 더 잘하게 되잖아요. 넘어질까 봐 안달하지 말고 넘어지게 둬야 해요. ‘무슨 일 나겠어?’라는 여유가 필요한 거죠.

회사 분위기도 한몫을 해요. 저희는 잘못해도 ‘다음엔 안 그러면 되지’하는 분위기예요. 실수에 관대한 거죠. 다만 투명하게 “제가 이번에 이런 점을 잘못했는데, 그래서 배운 건 이거예요”라고 공개를 해요. 배우면 된 거예요. 그걸 공유하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실수하는 걸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저 사람이 나 대신 실수해 준 거잖아요. 그렇게 배우는 것이 더 큰 것 같아요. 덕분에 실수에 대해 다들 크게 두려워하지 않지요.

제가 이벤트나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꼭 하는 건 랩업(wrap-up)이에요. 다음에도 가져가야 할 부분과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부분에 대해 항상 분석해요. 배우고 다음에 안 하면 되는 거니까요.

[회사의 지원을 받으며 개인의 철학을 펼치다]

저는 뭘 하든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요. 다수(majority)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많은 걸 누리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더 관심을 가질 곳은 소수(minority)에 속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의 권리와 이를 위한 문화 운동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띵동이라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가 오픈을 위한 모금을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회사에 “구글에 이게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든다(Building for everyone)’는 구글의 기본 철학과도 맞는다”라며 모금을 제안했어요. 누가 봐도 좀 생뚱맞잖아요. 구글이 왜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를 지원해요. 그런데 회사에선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며 3만 불을 기부했고 실제로 센터가 생겼어요. 우리나라 1호였지요. 지금도 성소수자 편에 선 회사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그러는데, 5년 전에는 더 했겠지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예요.

그런 경험을 통해 제가 구글 안에서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회사가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어서 감사해요. 그래서 제가 구글 이야기를 할 때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나 봐요. 제 개인의 철학과 잘 맞는 회사이고 그런 활동을 했을 때 지지를 많이 해주는 곳이니까요. 저는 ‘마흔 살 되면 비정부기구(NGO) 일을 하리라’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구글 안에서 하는 게 밖에 나가 풀타임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아직까지는 더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이유]

제 명함에 적힌 ‘정김’경숙이라는 이름을 모토로라 때부터 20년 넘게 쓰고 있는데요. 호적은 못 바꿔서 여전히 ‘김’경숙으로 되어 있어요(당시엔 성인의 경우 호적에서의 성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했어요). 제 명함을 받으신 분들 열에 아홉은 “본래 성이 뭐냐”, “남편 성이냐”라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는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합니다”라고 한 번 더 설명할 수 있잖아요. 그게 제가 세상을 바꿔가는 방식이에요.

20년 넘게 점자 명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시각장애인분들을 만나 제 명함을 줄 상황은 거의 없어요. 제 기억엔 딱 두 분뿐이었어요. 그런데도 계속하는 건 소수자를 배려하자는 제 나름의 문화 운동 차원인 거지요.

[이 많은 활동을 하게 만드는 힘]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요. 오늘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거고, 다음 세대를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선배들에게 이 사회를 물려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과 부채 의식도 있고요.

지금 우리 사회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많지만, 불평만 하는 건 너무 싫어요. 싫은 게 있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작은 거라도 해야죠. 행동을 통해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저는 소수자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정약용이에요. 옛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권력 부패를 늘 지적하고 관리자들의 청렴을 강조했어요. 특히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을 위한 애민(愛民) 정신을 가졌거든요. 그 당시 소수자를 위한 일들, 사회와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들을 많이 하신 걸로 알아요. 그분이 태어난 ‘마재’라는 곳에 한 달에 한 번은 갈 정도로 좋아해요. 문안인사 가듯 들러서, 거기 적혀 있는 문구들을 쫙 읽고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아요. ‘정약용 유배길’이라고 강진부터 남해까지 5일 동안 걷는 코스가 있는데, 그 길을 걸으며 그분 발자취를 따라가 본 적도 있어요.

 


 

<헤이조이스 프리미엄 컨퍼런스 Con.Joyce>

1월 12일 토요일,

정김경숙 님과 함께 ‘내 세계를 넓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Con.Joyce] 내 세계를 넓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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