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초빙교수이자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대표운영자, 권혜진 님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식, 사이드 프로젝트”

12월 8일 콘조이스 연사 – 권혜진 님

권혜진 님

–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대표운영자, 사단법인 CODE 이사

– 포스데이타(현 포스코 ICT)에 입사하며 ‘데이터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중앙일보를 거쳐 동아일보 컴퓨터활용보도(Computer-Assisted Reporting) 담당 기자, 뉴스타파 리서치 디렉터 겸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데이터저널리즘 커뮤니티 만들기, 컨퍼런스 개최,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신설 등 데이터저널리즘 생태계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동 대학 정보과학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석사, 문헌정보학과 박사를 졸업했다.


권혜진 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데이터 저널리스트다. 하지만 언론계 선후배들에겐, 인생을 참 멋있게, 자기 주도적으로, 집중해서 사는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평생 일 할 결심으로 결행한 부부 별산제, 자기만의 작업실로 서촌 한옥 한 채를 사버린 배짱, 프로급 맥주 생산자(브루어)이자 ‘광폭 인맥’의 소유자. 그가 지금껏 지극히 ‘나다운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데엔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들의 힘이 컸다.

 

[동명이인 모임 ‘권혜진 클럽’…누구에게나 응원이 필요하다]

제가 하는 모임 중에 ‘권혜진 클럽’이라는 동명이인 모임이 있어요. ‘인생에서 뜻하지 않는 만남이 주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해서 권혜진 이름을 검색해 초대 메일을 보냈어요. “1년에 딱 1번씩, 20년 동안 만나보자”라고 시작한 모임이 올해로 15년째가 됐죠. 1-2년에 한 번씩 만나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해요.

이야기가 끝나면 무조건 “잘 했어! 권혜진!”하고 소리를 치는데 그럼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돼요. 이게 상대에게 하는 말이자 자기한테 하는 말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한 지지와 위로가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땐 ‘나중에 권혜진 모임 가서 이렇게 잘 살았다고 얘기해야지’라고 생각하면 힘이 된다고 해요.

[‘두 집 살림’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

일산에 살지만 서울 종로 서촌 쪽에 조그만 한옥 작업실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결혼을 하고 보니까 나만의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애가 생기고 나니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이 없는 거예요. 집 안에 분리된 내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고요. 언젠가 여력이 생긴다면 그 돈으로 작업실을 마련해서, 주거와 나만의 공간을 분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래 준비한 결과물이지요.

나만의 공간이 있으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고,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아요. 공간이 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공간을 통해 재미난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일하는 공간이지만 빌려주기도 하고 다양한 모임도 진행해요. 제가 직접 만든 수제 맥주도 있고 120인치 스크린도 있기 때문에 영화 보기도 좋고요. 작은 출판기념회가 열리기도 해요.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껏 초대하며 즐거운 공간으로 쓰고 있어요.

[별산제, 우리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

결혼 전 다른 부부들을 보니 돈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결혼 초부터 별산제(부부가 따로따로 재산을 소유하는 제도)를 받아들였어요. 각자의 수입은 각자 관리하고 최소 공동생활비만 내기로 한 거지요. 소비 수준을 높지 않게 가져갔고요.

부부간에도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직업 선택의 자유, 사상의 자유, 행복추구권, 거주⋅이전의 자유까지도요. 다른 부부들이 사는 걸 보니까 너무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렇게 살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존중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상대방에게는 중요한 문제를 바꾸라고 요구하고 쥐어짜면 불행할 뿐 아니라 바뀌지도 않는 것 같은 거예요. 안 그래도 인생에는 힘든 일이 많으니까, 그런 불필요한 실랑이는 안 하고 싶었어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불행해질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리고 무언가 성취하고 싶은 게 있으면 상대방에게 요구하기보다 자기가 하면 돼요.

[‘심각한’ 취미 생활을 시작하다]

2003년 즈음 동아일보에 ‘권혜진의 아이쇼핑’이란 코너가 있었어요. 하나의 품목에 대해 어떻게 인터넷에서 찾는지 알려주는 코너였죠. 그때 맥주를 만드는, Home Brewing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맥주 제조 키트도 사고 심각한 취미 생활을 시작한 거죠(웃음). 전 덕후 기질이 있어서 한 번 빠지면 디테일한 것까지 집착해요. 맥주 담는 병으로 초록색 스윙탑형 ‘그롤쉬’ 맥주병을 좋아했어요. 그때 세계 맥주 전문점을 돌아다니면서 그롤쉬 맥주병을 꽤 모았어요. 그리고 맥주 라벨도 직접 만들어서 일일이 붙이기도 했어요. 지금은 클라우드에서 레시피 짜서 저장하고, 스마트폰에서 블루투스로 맥주 장비에 레시피를 보내는 올인원 장비를 쓰고 있어요.

뉴스타파에 있을 때는 송년 맥주를 직접 만들어 선후배들과 먹고 싶어서 밀맥주랑 스타우트를 각각 20L 씩 만들었어요. 그다음 해에는 IPA 송년 맥주를 더 잘 만들고 싶어서 뒤늦게 3달 과정 맥주 학교를 다니기도 했죠.

인터넷과 데이터를 다루는 직업 덕분에 시간 효율성이 높아졌어요. 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이 몇 시간 걸리는 일을 짧은 시간에 해치울 수 있었죠.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의문이 생겼어요. 그렇게 줄창 달리기만 할 건가. 누군가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뭘 하고 싶어?”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인생의 한순간을 베어내서 내 노동과 시간을 들인 무언가를 대접하고 싶어. 그게 나의 사랑의 방식이야.”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맥주라는 게 레시피 짜고 양조하고, 발효 숙성하는 데는 1달 이상 걸리거든요. 그 시간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하며 술을 만드는 거죠. 이 과정이 제가 사람들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여전히 심각한 취미로 두고 있지요.(웃음)

 

[선배가 거의 없는 직군에서 일한다는 것]

1995년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언론사에 ‘데이터베이스 저널리즘’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해외로부터 현장 취재가 아닌 데이터베이스 취재를 통해 보도하는 기법이 많이 들어오고 실제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중앙일보에서 처음으로 ‘전문 서처’라는 이름으로 데이터베이스 컨텐츠 전문가를 채용했고, 그때 제가 경력 공채로 들어갔어요.

한국에 처음 만들어진 직군이다 보니 선배가 거의 없었어요. 언론사에서도 사람을 뽑아는 놨는데 어떤 일을 시킬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황이었죠. 제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했어요. 예를 들어 국내에서 PDF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언론사가 중앙일보였는데 제가 사내 아이디어 모집에 낸 제안이 채택된 것이었어요. 그걸로 사내 상도 탔죠. 당시 해외에선 야후 디렉토리 서비스가 유행했는데 유사한 디렉토리 서비스를 제안하고 사이트 목록을 만드는 데에도 참여했어요. 두 서비스는 실제 트래픽을 많이 만들어냈어요.

당시 저에게 ‘데이터 전문가’ 일은 월급을 가져다주는 직업 그 이상의 의미였어요. 제가 굉장히 하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데 돈도 생기는 느낌이었죠. 인터넷과 데이터에 밝은 사람을 한 명 뽑았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일이라는 것은 지식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나의 미래 고객을 발굴한다’라는 생각으로 일했어요. 앞으로 내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회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고, 나중에 내 우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잘하게 되고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어요.

중앙일보 다음에 동아일보에서 일했는데, 그때 ‘회사 근처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 사내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근처 맛집 추천해달라, 전화번호 알려달라”는 연락이 오곤 했어요. 항상 기분 좋게 답해 드렸죠. 일로는 연락 올 일이 없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 외에도 자잘한 요청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기분 좋게 처리했어요. 그렇게 생긴 다양한 연결점들이 나중에 제가 새 일을 만들 때 굉장히 큰 도움이 됐지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한 선배가 쓴 ‘데이터를 저널리즘에 이식한 권혜진 기자’라는 글에서 ‘권 기자는 늘 자신의 영역에서 진보했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참 감사한 평가였어요.

저의 역량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론계엔 탁월한 분들이 많죠. 다만 저는 제 영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늘 애썼어요. 동아일보에서 했던 14, 15, 16대 대통령 선거 표심 이동 GIS 분석, 뉴스타파에서 했던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사이트 등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라고 판단되면 월급 받는 직장인으로 남기보다는 나와서 다시 시작했고요. 중앙일보에서 나왔던 시점도, 동아일보에서 나왔던 때도, 뉴스타파를 그만둔 때도 다 그 시점이었어요.

뉴스타파에 합류한 건 언론인으로서 굉장히 감사한 기회였어요. 2013년 초, 뉴스타파에서 국내 처음으로 데이터저널리즘 팀을 만들고 저희 팀에서 했던 일이 ‘국정원 계정 의혹 트위터 네트워크‘ 분석이었어요. 기존의 현장⋅사람 취재에서 나올 수 없는, 현장 자체가 데이터인 사건이었죠.

기존의 데이터 저널리즘은 현장 취재의 보조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 보도는 가장 중요한 ‘현장’이 바로 데이터였어요. 2013년 초라 용기도 필요했죠. 당시 상황에선 국내에서 트위터 데이터를 제공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어요. 결국 해외에서 입수했어요. 언론의 권력 감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진실 추구, 인터넷 영상 기반, 사회적 임팩트 등에서 우리나라 데이터 저널리즘을 한 걸음 진전시킨 보도였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퇴장할 것인가, 그리고 또 어떻게 진보할 것인가]

저는 ‘언제 물러나고, 어떻게 한 걸음 진보할 것인가’에 대해 늘 생각해요. 뉴스타파 그만둔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제가 이 연봉을 받고 계속 그 일을 하기보다는 이미 더 잘 하는 후배들이 있으니 새로 사람을 뽑고 조직이 젊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내게 선배가 없어서 어려웠던 일들과 더불어, ‘짬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꼰대가 아닌 ‘선배’니까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꼭 제가 속했던 조직의 후배만 챙기는 게 아니라 업계에서 분투하는 후배들,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토양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은 30대 때 힘들었던 나에게 건네는 응원 같은 거예요. 제가 20년 넘게 해왔던 분야에서 그렇게 퇴장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걸 슬슬 재미나게 할 생각이에요. 50대에는 시민 단체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오픈 데이터와 관련된 시민 단체인 코드와 정보공개센터 활동으로 한 걸음 다가선 것 같아요. 그 후엔 작은 비영리 브루어리를 할지도 몰라요.

[스스로 빛나려 하지 않기에 빛나는 사람]

이미 있던 일을 더 잘 되게 하는 사람이 있고, 없던 일을 만들어내는 걸 잘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저는 후자에 가까워요.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일은 언제나 가슴이 뛰고 보람 있어서 돈이 되든 안 되든 하는 편이에요.

2년 전부터는 한국 데이터 저널리즘 발전과 정보 공유를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작년 11월에는 구글의 도움을 받아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를 처음 만들어서 잘 끝냈어요. 올해는 컨퍼런스와 함께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도 시작해요. 그다음 할 일은 데이터저널리즘 인력 양성인데 다른 분들과 같이 고민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자기가 빛나기 위해 하는 일은 사람들이 굉장히 빨리 알아챌 뿐만 아니라 그 순간부턴 도와주지 않아요. 꼭 필요해서 하는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어야 도움을 주죠. 그래서 몇몇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면 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렇게 몇 명이 알아주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때문에 다음엔 좀 더 잘 돼요. 결과적으로 보면 또 제가 그렇게 빛이 안 나는 일도 아니고요. 100만큼 노력했을 때 전부를 알아주진 못하더라도 ‘진심’이라는 건 통하기 마련이니까요.


 

<헤이조이스 프리미엄 컨퍼런스 Con.Joyce>

12월 8일 토요일,

권혜진 님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의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Con.Joyce] 나만의 커리어를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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