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젤 전무, 송지혜 님

“사람의 결단은 생각보다 사소한 오감에서 시작한다”
4월 13일 콘조이스 연사 – 송지혜 님

송지혜 님

– 헤이조이스 인스파이러

– 휴젤 전무 (화장품 사업부/웰라쥬 브랜드 운영 총괄)

– 전)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닥터키친 운영고문

“20년간 한국 소비재/유통 업계의 혁신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고자 노력해 온 컨설턴트이자 마케터. 집에서는 허당끼 가득하지만 나름 한몫하는 엄마이자 아내.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남는 것이 녹록지 않지만, 넘어지고 비틀거려도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회 공헌이라 믿고 있습니다. 헤이조이스를 통해 좀 더 많은 동료 및 후배들과 서로 삶을 나누고 다독이고 싶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비단길을 떠나다]

베인앤컴퍼니를 15년 다녔어요. 컨설팅계의 삼엽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다녔죠.(웃음) 그 정도 다닌 회사를 그만둘 땐 한두 개의 이유로는 안 되더라고요.

처음 파트너가 됐을 땐 별 달았다고 한턱 쏘고 그랬는데, 파트너 2년 차쯤 되니까 왠지 모를 무기력증이 왔어요. 천성이 열심히 하는 성격인지라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커피 한 잔 들이키고 뛰지만, 점점 이메일 답도 느려지고 자기 전엔 주인공 혼자 호숫가의 숲에서 지낸 이야기가 담긴 <월든>이라는 책만 읽었죠. 그때부터 ‘내가 정말로 즐기지 않고 있다’, ‘왠지 오래갈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회사 비전 선포식에서 “우리는 글로벌 최고의 신뢰할만한 조언자(trusted adviser)가 되는 것이 목표다”라고 할 때, 모든 주니어가 눈을 반짝이고 있는데 뒤에서 팔짱 끼고 앉아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미션을 들으면 원래 가슴이 뛰었는데, 그날은 축 가라앉으면서 ‘내가 trusted adviser가 되기 위해 근 20년 동안 밤새 노력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베인앤컴퍼니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정말 열심히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이에요. 그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도태되는데, 저는 3~4년 전부터 이미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대로는 디렉터 승진까지 갈 수 없겠다고 느꼈죠. 다른 사람들은 “한국에 몇 안 되는 여자 파트너라서 승진에 유리하다”고 했지만 전 알고 있었어요. 여자들은 정말 즐기는 일을 혼신의 힘을 다해 하지 않으면 위로 올라가기 너무 힘들다는 것.

끝까지 승부를 보고 싶다면 ‘그때는 좋아했으나 지금은 아니게 된’ 이 일이 아니라, 지금 마흔네 살의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리 봤을 때,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현실적으로 잘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던 시점에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가 도장을 찍게 된 건 건강 이슈였어요. 8개월간의 1차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지 3개월 만에 유방 쪽에 혹이 발견됐죠. 결론적으론 괜찮았으나 그 당시 건강검진 소견이 암으로 나왔어요.

프로젝트 때문에 뛰어다니다가 그 얘길 듣고 주저앉았어요. 암이 아니라는 건 2주 만에 알게 됐는데, 그 2주 동안 제 모든 가치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결국 저는 지금 잘 하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살면 죽을 때 후회하겠다’ 싶었어요. 예전의 저에게 “너 이러다 죽을 때 후회해”라고 했다면 실감이 안 났을 텐데, 건강 진단서에 암 소견 있다고 하니 실감이 딱 되더라고요. 그 진단을 받고 나서야 회사에 퇴직하겠다고 이야기했죠. 회사에 말한 이유는 건강이슈였지만 사실 그건 20%뿐이고 80%는 ‘정말로 즐기지 않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엔 내 인생이 아깝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만뒀다는 얘기를 하면 10명 중 9명의 반응은 “너무 아깝다”였어요. 유일한 여성 파트너였기에 후배들한테도 미안했고요. 하지만 암 선고를 받으면, 내 인생밖에 안 보이고 잔가지들이 다 쳐집니다.(웃음)

[“어디 회사에, 뭘로 가신대?”]

베인앤컴퍼니 사람들은 보통 그만 둘 때 다음에 갈 곳 정하고 그만두거든요. 그런데 저의 경우 의도적으로 갈 곳을 정해놓지 않고, 그 당시에 받았던 제안들을 전부 거절하고 그만뒀어요. ‘미지의 세계로 나를 넣어보자’는 마음이었죠.

사람에 대한 욕심,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별로 현세적 욕심은 없는 편이에요. 사람들과 나눈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팁을 발견하는 편이고요. 누가 저보고 야심이 있다고 하면 속으로 ‘날 정말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해요.

[이직하기 전 꼭 생각해봐야 할 3가지]

이직의 기준에는 3가지 층위가 있어요.

맨 위층은 ‘사회에 뭘 남기고 싶은가’, ‘내 인생에 뭘 남기고 싶은가’ 이렇게 2개로 나뉠 수 있어요. 굉장히 상위 기준이에요.

중간 층은 산업의 전망, 회사의 전망, 연봉, 직급 등 이직하면서 분석하게 되는 좌뇌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요.

맨 아래층을 이루는 ‘오감’은 매일매일의 일상이 어떻게 구성되길 원하는가를 뜻해요. 보통 사람들은 이 질문을 잘 안 해요. “9 to 6 됩니까? 휴가 잘 쓸 수 있습니까?” 등의 단편적 이야기만 하죠. 저는 이 층위에서 생각할 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도 했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어떤 옷을 입고 다니고 싶은가? 어떤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은가?’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정장을 입고 싶은가? 편한 캐주얼을 입고 싶은가?’, ‘임직원 수십 명이 쫙 앉아있는 프로페셔널한 분위기가 좋은가? 푹신한 의자에 둘러앉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좋은가?’ 이런 것들요.

그래서 베인앤컴퍼니를 그만두고 쉬는 동안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밥 먹고 꼭 사무실 구경을 시켜달라고 했죠. 직접 가보고 오감으로 느끼면서 제가 원하는 인생 경험이 뭔지를 알고 싶었거든요.

[SKY와 MBA의 전형성에서 벗어나다]

다음 커리어에 대해 생각할 땐 맨 위층과 맨 아래층만 봤어요. 그리고 맨 위층 못지않게 맨 아래층도 중요하게 봤지요. 너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의 매일이 얼마나 즐거운 지가 정말 중요했거든요. ‘내 스토리가 담긴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 외에는 다 맨 아래층에 있는 기준들로 판단했어요.

먼저 상품을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매장에 가서 매니저와 얘기도 하는 ‘오감적인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문서로 비즈니스를 논하는 전형성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소비재 유통은 소비자와 온 오감으로 교감해야 하는 업인데 그걸 하나도 안 해보고 ‘소비재 유통 전문가’라고 포지셔닝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SKY와 MBA의 전형성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컨설팅 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력서에 이름을 바꿔써도 모를 정도로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저희 사업부에는 미대 출신부터 상품 내용물 전문가, 매장 전문가까지 배경이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비유를 하자면 기업 경영이라는 것을 예전엔 부감으로 봤다면, 지금은 숨소리와 땀 냄새가 느껴지는 백스테이지 클로즈업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파워포인트상에 적힌 문자와 종이가 아닌 오감으로 느끼고 있어요. 흑백 TV만 보다가 총천연색 TV로 보게 된 느낌이랄까요. 가끔씩 ‘내가 이런 경험을 하고 싶어서 나왔구나’ 싶죠.

[사람의 결단은 생각보다 사소한 오감에서 시작한다]

생각보다 사소한 데서 큰 결정이 이루어져요.

어떤 종류의 경험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꼭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는 않더라고요. 아까 제가 자기 전마다 <월든>이라는 책을 읽었다고 했잖아요. 경제경영서를 더 좋아하던 사람이 매일 그런 책을 읽을 정도로 침잠되어있다는 건 오감이 나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모범적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불만이 많은 상태여도 아침 커피 한 잔이면 금세 관성적으로 돌아가요. 그럼에도 중간중간 오감이 보내는 신호들은 있거든요. 그 사소한 신호를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여성들에게 유리하다]

요즘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여성들에겐 베네핏이 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이럴수록 실력과 효율성으로 판단하게 되니까요. 이제는 더 이상 “담배 한 대 피시죠 형님” 하는 걸로는 살아남기 힘들어요. 임원들도 그런 애들과 가까이 있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아요. 진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자기 브랜드, 능력, 전문성으로 승부를 봐야 해요.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을 보면 1.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거나(Passion) 2. 정말 남을 이기고 싶거나(Competitiveness) 3. 정말 인정을 받고 싶거나(Recognition) 이렇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요. 그리고 40대부터 첫 번째가 없으면 다 판가름 나요. 두세 번째 가지고는 30대 후반을 넘길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다들 정말 희한하게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아가더라고요.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거나, 현실적 이유로 반대로 가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를 바닥부터 파악하는 과정을 20, 30대에 한 번은 겪어야 해요. 그래야 성공해요. 저의 경우 소비재 유통 업계에서 전문성을 쌓기를 원했고, 다양한 기업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솔루션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가보는 것을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에 팀장 이상부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또 연결되는 것은 남을 이기고 싶거나 인정 욕구, 돈, 직책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끝까지 올라가는 데 역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면서 올라가고 싶고 이기고 싶은 사람들은 언젠가 지쳐서 나가떨어지죠.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베인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은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정말로 남이 잘 되는 걸 좋아하고 정말 남 돕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가더군요.

 


 

‘저 정도 경력, 연차면 안정적일 텐데 왜?’
‘또다시 불확실한 곳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여기,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안전지대’를 떠난 세 명의 인스파이러가 있습니다.

그동안의 성취를 누리기보다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어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하고 있는,
한때가 아니라 지금도 빛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헤이조이스 프리미엄 컨퍼런스 Con.Joyce>

4월 13일 토요일,

송지혜 님과 함께 ‘낯선 세계로 한 걸음’을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Con.Joyce] 낯선 세계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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